이사를 했다. 7년간 살았던 곳에서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더 넓고 더 조용한 곳에 비해 렌트비는 많이 비싸다. 이사 하면서 많은 것을 버렸다. 사진 관련 잡지, 서적과 흑백 사진 작업을 할 수 있는 암실 기자재는 대부분 옮겨왔다. 그러나 키친 용품이나 옷가지, 생활 용품은 아주 많이 버렸다. 꼭 필요하지 않는 것은 다 버렸다고 볼 수 있다.
이사를 하면서 많이 느낀 것은 쓸데없는 물건을 많이 산다는 것이다. 집안에 살펴보면 쓸만한 것이 있는데도 뭔가 필요가 있으면 무조건 사고 본다. 이렇게 해서 똑 같은 용도의 물건들이 쌓이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이사를 할 때는 또 다 버리게 된다. 버리는 것도 버리는 것이지만 이사를 한다는 것은 무척 힘들다. 돌처럼 무거운 책들을 옮겨야 하고, 혼자서는 옮길 수 없는 암실 확대기도 문제다.
예전에 사진에 미쳤을 때는 암실 확대기를 6개까지 소유했었다. 그러나 전에 이사할 때 3개를 버리고 3개만 갖고 왔었다. 그런 후에 대학에서 흑백 사진 고급반에서 만난 어떤 고등학교 여교사에게 박스도 뜯지 않은 새 확대기를 기부했다. 지금 갖고 있는 것은 6x7 밀리 중형 확대기와 4x5 대형 확대기 2개이다. 일본에서 제작한 것으로 LPL 제품이다. 지금도 새 것을 사려면 몇 천불을 줘야 하는 고가이다. 그러나 디지털이 발달하면서 중고 가격으로는 무척이나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우리가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생활의 먼지가 쌓이듯이, 집안 곳곳에 알지 못했던 먼지가 수북했다. 그래서 가끔은 위생이나 청결을 위해서도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예전 속담에 과부는 집에 깨가 서말이라도 홀아비는 집에 먼지가 서말이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아주 깔끔한 성격이 아니라면 남자의 경우 혼자 살면 집안에 먼지가 쌓이게 되어 있다. 난 이번 이사를 하면서 집안 구석 구석에 쌓인 먼지를 보면서 부끄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그 먼지 속에서 살았다는 얘기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과거에 작성해 둔 원고를 2개나 발견했다. 하나는 [칼릴 지브란의 연인들]이라는 제목의 글인데 아마 25년도 더 전에 쓴 글이다. 원래는 한국의 어느 유수 출판사에서 출간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IMF 바람이 출판계를 휩쓸 때 바람을 맞고 말았다. 또 한 개는 진짜 내가 좋아하는 원고다. 타이완의 중국 작가가 과거 북대황 (흑룡강 근처, 대흥안령 산맥을 중심으로한 대 초원 지역)의 어린 시절을 회고 하며 쓴 글이다. 예전에 내가 어느 잡지사에 근무할 때 [북대황]이라는 책이 출간되어 매진 되는 인기를 얻었다. 이번에 찾은 원고는 [목야]라는 제목이며,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은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대초원에서 목장을 하는 집 아들인 소년과 매년 그 초원을 지나는 유목민 몽골 소녀와의 애틋한 동심의 사랑 이야기다. 오래 전에 내가 어떤 지인에게 부탁하여 번역해 둔 것인데, 이제 찾게 되었다. 전자책으로 곧 출간하고 싶다.
지금 새로 이사 온 곳은 건물은 오래 되었으나 새로 레노베이션 해서 비교적 깨끗하고 쾌적하다. 이곳에서는 제발 청소도 자주 하고 집안 정리도 해서 좀 질서 있게 살고 싶다. 사실 이것도 말같이 쉽지 않다. 집안에 누가 자주 놀러 오는 경우는 남이 봐서라도 부지런을 떨겠지만 혼자 살면 차일피일 미루게 되어 있다. 결심이 필요하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사를 하면서 또 한 가지 생각한 것은 옆에 마누라가 없다는 게 여간 다행한 게 아니었다. 이사를 한다면 대부분 가정에서 여자가 이삿짐을 싸고 물건을 정리하고 그리고 심지어 청소까지 하게 된다. 내가 이번에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하다 보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여자들은 작은 것도 버리지 않으려고 하고, 세간살이를 다 싸서 갖고 가려 할테니 이만 저만 고생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 내 이사를 도운 것은 한의사 하는 친구 한 명이 유일하다. 토요일 넘어와서 무거운 암실 확대기와 철제 테이블을 옮기는 일을 도와주었다. 그 나머지는 전부 내가 했다. 나를 도와준 가장 믿음직한 도움은 이사 전에 구입한 카터와 내 토요타 자동차이다. 120달러 정도 주고 미국 회사 대형 건축 자재점에서 구입했다. 300파운드까지 실을 수 있다고 했지만 책이 그렇게 무거운지는 모르겠다. 이번에는 주로 튼튼한 직사각형 빨래통 2개로 짐을 날랐다. 비교적 쉽게 옮겼으니 카터 값을 뺐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심신이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아프다. 왼쪽은 멀쩡한데 왜 오른쪽이 아픈지는 알 수 없다. 아마 2-3일 지나면 나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나의 이사는 끝나게 되었다. 많은 것을 교훈하면서.
2021년 3월 29일 정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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