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사진가를 슬프게 하는 것들
기다리고 기다렸던 주말, 사진 촬영을 떠나려고 부산한 새벽,
커튼을 열어 창 밖을 보니,
하늘은 너무 맑고 햇살이 쨍쨍 내리 쪼이는 여름날 아침.
빛이 거친 날에 어떻게 사진을 촬영? 사진가는 절망에 가까운 슬픔에 잠긴다.
구름이 몇 점 떠가는 푸른 하늘, 양떼 유유히 풀을 뜯는 평화로운 들녘,
카메라 세팅을 마치고 필름 홀더를 넣은 바로 그 때,
어디서 날아온 공군기인지 하늘을 일직선으로 제트구름을 뿌리며 서쪽 하늘로 날아갈 때
셔트 릴리스를 잡은채로 멍허니 하늘만 처다 보는 사진가의 슬픈 눈 빛.
풍경을 잡겠다고 그 먼길을 달려와서
카메라를 펼쳐서 무거운 맨프라토 삼각대에 올리고,
장비 가방을 이잡듯이 찾아봐도 컨넥터 플레이트를 놓고 왔을 때, 혹은 필름을 두고 왔을 때
울고 싶다는 말은 사치스런 표현이고, 울퉁불퉁 돌로 머리를 찍고 싶은.
며칠을 생각하고, 꿈꾸며 달려운 출사길인데
작품 한 장 건지겠다고 작심을 하고 달려왔는데,
그 중요한 위치에 할일 없는 사람들 몇이서 얼쩡이고, 고기라도 구워 먹을 태세일 때
펼졌던 삼각대로 몽땅 때려 잡을 수도 없고, 짱돌로 대글박을 찍을 수도 없고.
무쇠같이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내려 놓고,
이마에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부지런히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 놓고 정신을 모으고 있을 때
어디서 왔는지 날파리처럼 와서, 이거 골동품 카메라냐고 물으며, 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심지어 렌즈까지 막 돌릴 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니면 화를 내야 할지.
해안 풍경을 촬영하겠다고 인적 없는 해안가를 꼭두 새벽에 달려 왔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군인인지 순경인지 수상한 사람 취급하며 심문을 할 때,
심지어 무식하게 필름이 든 홀더를 열면서 변견처럼 컹컹거릴 때,
거기 까지는 참겠는데, 사진가는 만만한 호구인지, 음흉한 표정으로 뇌물이라도 뜯을 심사로, 같이 동행 하자고 윽박지르고 나올 때.
가족이 일어나기도 전 이른 새벽에 도둑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장비를 챙겨서 대문을 나서는 데 언제 깼는지 마눌이 앙칼지게 내뱉는 언어의 화살.
누구는 주말 과부냐, 허구헌 날 어딜 혼자 가느냐! 사진 핑계로 어떤 젊은년 만나러 가냐?
촬영하다가 벼랑에 떨어져 콱 죽어! 생명보험 타서 젊은 놈 만나 살거다.
사진가는 주로 혼자 다니지만, 그래도 동호회가 모인다고 해서 마지 못해 나갔는데
장비 자랑, 필름 자랑, 심지어 자랑할게 없을 때는 옷자랑에 신발 자랑까지 이어지더니,
해가 지는 그 일몰의 sweet hour,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촬영 시간에, 배고프니 밥먹으러 가자고 우르르 몰려갈 때
밥 먹으러 나온 길인지, 사진을 촬영하러 나온 길인지, 헷갈릴 때.
조용한 들녘에서 오만상을 지으며 사진 촬영에 몰두하는데,
막투 신형 4 디카 든 놈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다가와서
마치 구시대 촌늠 취급하며, 대형 카메라 비웃으며, 화질이 어떻고, 화소가 어떻고, 설레발을 치면서 으시대며 가지도 않을 때
양반 체면에 얼굴을 찡그리고 욕은 할 수 없고, 속으로 부글부글 끓을 때 사진가는 슬픔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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